공연을 말하다! 이 게시판은 공연 관련된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제목[문화뉴스] 플레이투스테이지 - 임형진 연출가가 말하는 '포스트드라마' 와 '다큐멘터리 연극'
작성자플티작성일2017-07-11
조회218HOPE 1

플레이투스테이지의 68회 출연자로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오는 14일부터 30일까지 브레히트의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Capital 01>을 무대에 올리는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대표인 임형진 연출을 만났다. 


* 플스 68회 방송 바로 듣기



플스 68회 게스트.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임형진 연출


Q. 연극 연출가가 된 계기는? 

ㄴ 어렸을 때는 연극보다 음악, 특히 종교음악(교회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나에게 영향을 준 음악가는 바흐와 베토벤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서 전공했지만 그곳에서 접한 것들은 내가 바랐던 유럽 교회음악이 아니라 주로 미국 쪽에 가까웠다. 개인적인 실망감은 전공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연극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리곤 하였다. 그러면서 간혹 그들을 도와 스태프 일을 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에도 음악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는 종교음악만 하며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음악과 연극을 함께 할 수 있는 예술, 오페라를 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무언가를 종합하고 결합하는 연출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오페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음악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생겨난 당시로선 매우 세속적인 예술-발명품이었다. 그 전까지 교회음악이 신을 얘기했다면, 당시의 오페라는 인간의 그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오페라 연출을 위해, 아니 공부를 위해 생각난 곳은 국립오페라단이었다. 당시 국립오페라단은 재단 법인화 되기 이전이어서 남산 국립극장에 속해 있었다. 나는 그곳을 찾아가서 뭐든 좋으니 다 시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 배운 일이 기획이었다. 당시 국장님은 내가 몇 달 못 버틸 거라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 작품 하나 끝나면 조연출들이 죄다 도망간다는 얘기를 했다. 조연출은 기획 일을 비롯한 온갖 것들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어쨌든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면서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덤벼들었다. 

그러던 사이 국립오페라단이 법인화되면서 예술의 전당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그곳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국립오페라 아카데미에서 연출 공부를 계속했다. 당시 국립극단 정상철 단장님께서 오페라단에 연극워크숍을 지도하러 오셨는데 나에게 워크숍의 연출을 맡기셨다. 오페라 라보엠을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그 작품은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마무리되어야 했다. 상처와 충격이 정말 컸는데, 정작 정상철 단장님께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시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국립극단으로 넘어와서 정식으로 연출을 배워보라고 제안하셨다. 국립오페라단과 국립극단 단장님들이 서로 상의를 하셨고 이듬해 나는 국립극단 연수 단원을 지원한 뒤 합격하여 그곳에서 연극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공부도 여전히 나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궁금한 게 자꾸 생기는데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답을 구할 수 없었고, 연극 관련 책을 봐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학교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동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의 갈증은 채워졌다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박사과정까지 밟게 된 이후 보다 본질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독일로 유학길에 올랐다. 



연극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Capital 01> 포스터


Q.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ㄴ 음악극에 관심이 많아서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었다. 사실 바그너는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근대 연출가 중의 한 사람이다. 처음으로 객석에 불을 끄게 한사람이었고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를 밑바닥으로 다운되도록 만든 사람도 바그너였다. 게다가 작곡과 대본, 지휘 등 공연의 모든 분야에 능통했던 연출가였다. 소위 천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그너가 태어나고 자라고 또 공부한 라이프치히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곳은 바그너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했던 음악가 바흐나 멘델스존, 슈만, 연출가이자 극작가 하이너 뮐러 등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소쉬르의 기호학 이론이 처음 시작된 곳도 라이프치히 대학교였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라이프치히에 터를 잡고 공부를 준비하던 중 몇 개월 뒤에 연극 페스티벌에 초청된 작품을 보러 베를린에 갈 일이 생겼다. 그곳에 간 김에 에리카 피셔-리히테라는 수행성의 미학이나 퍼포먼스 이론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을 찾아가 만나게 됐다. 소문에는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면담 후에 예외적으로 나를 제자로 받아줬고, 그 후 베를린으로 거주를 옮겨 베를린자유대학교 연극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분을 만나면서 세계 연극사에 나올만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그중 아브라모비치라는 전설적인 행위예술가를 만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학문적인 배움도 있었지만, 연극의 대가들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런 분위기를 경험했다는 것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Q. '포스트 드라마'에 대해 설명한다면? 

ㄴ 포스트 드라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이전까지의 모더니즘은 마치 '사랑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정해진 감정들에 충실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 비롯된 거대 서사를 부정하거나 정반대의 일탈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들을 다룬다. 

포스트 드라마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현상들이 반영된 연극이라고 보면 된다. 모더니즘 계열의 연극은 대부분 답을 알려주려고 한다. 반면에 이 연극은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거나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들과는 정반대의 얘기를 한다. 그래서 관객들이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전통적인 모더니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의 바탕에서 조금 다른 현상들이 보이는 즉, 모더니즘의 연장 선상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전통적 가치를 넘어서거나 파괴하려 하는 소서사를 연극에서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모더니즘과 결합해서 관객들이 보기에 알 듯 모를 듯한 연극을 만들고 있다. 



연극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Capital 01> 연습사진


Q. 연극을 광범위한 영역에서 생각하고 있는데, 이렇게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본 마인드가 있다면? 

ㄴ 연극은 철학의 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특정 예술 장르 하나로만 고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연극이 세상의 다양한 범위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수행성'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는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볼 때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만 보기 때문에 상대방과 대화의 교환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즉, 서로 전제가 다른 것이다. 그 다양한 시각을 인지해야 하고 그중에 자기의 시각을 선택하는 데는 철학이 필요하다. 

이런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연극을 하나의 예술 장르 안에서만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연극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때 연극은 예술적인 영역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인 무언가로 기능하게 된다. 연극이 새로운 사회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선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몸이 존재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해되는 관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몸 철학'을 중시한다. '연극적'이라는 말은 이미 꾸며지거나 가짜를 뜻하지만, 우리 일상을 가짜라고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일상적인 것들을 연극의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있다. 


Q. 독일과 한국의 관객 분위기가 차이가 날 텐데… 

ㄴ 문화가 다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이성'에 집착한다. 냉정하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한국인의 마인드는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장 먼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관객들은 굉장히 감정적이다. 현실과 드라마의 구분을 잘 못 하며 개인의 감정 때문에 공적인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감정'과 '흥', '교감'들이 중요하지만 독일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독일인에게는 한국적인 것이 수용되면 좋을 것 같고 반대로 우리나라에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보완되면 문화적 층위가 두터워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의 연극도 국내에 자리 잡을 날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Q. 극단명이 독특하다. 무슨 뜻인가? 

ㄴ 독일에 머물면서 계속 고민했던 이름이었다. 처음엔 그냥 베를린에서 활동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할 일이 생겨 한국에 돌아오게 됐고, 2015년에 공식적으로 극단을 만들었다. '테아터라움'은 독일어로 '연극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철학하는 몸'은 지금까지 많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거나 혹은 그 반대로, 행동만 하고 생각을 안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겨있다. 적절히 인식하고 행동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내가 보기엔 브레히트는 사회적 존재가 사유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적 존재는 '구성'과 '틀', '환경'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졌을 때 연극이란 사람의 생각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떠한 연극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서 나는 일상성에 관심을 끌게 됐다. 아주 사소한 일상을 연극에서 얘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이 더 '연극적'이기 때문이다. 



연극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Capital 01> 연습사진


Q. 작업할 때 중점을 두는 것이 있다면? 

ㄴ 앞서 말한 것처럼 일상성을 강조하는데, 그래서 사소한 것을 잘 관찰하는 편이다. 연습 때도 단원(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보통의 연극 연습은 희곡을 가지고 작품이나 인물 분석을 하는데, 우리는 앉아서 서로의 관심사에 관해 얘기한다. 마치 세미나를 하듯이 말이다.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은 연극을 하려는 이유가 서로 공통으로 발견된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난다.

술을 마셔서 친해지는 것보다 자기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배우 개인을 망가뜨리는 걸 원치 않는다. 실제로 이러한 대화 작업을 통해서 배우들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소리에 관심이 많아서 연극에 사용하는 것을 늘 고민한다. 영상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영상의 내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현상적으로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영상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공유하게 되고 자기의 감각이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대부분 연극이 무대에서 전달하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금세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고민하고 있다. 


Q. 관객층이 두껍지 않을 것 같은데… 

ㄴ작년에 사비를 털어 창단공연을 했다. 공연 이전에는 대학로에 대해 분석하다가, 이곳에 상업극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대학로 현실에서 오히려 진지함으로, 그리고 예술적인 강조를 가지고 오히려 '장렬히 전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에겐 오히려 쾌감이었다.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공연을 올렸는데,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상업극 공연장에선 관객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당시 우리 연극이 재미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겁지만 재미있는 요소들도 곳곳에 많이 숨어 있었다. 우리와 같은 연극은 공연을 보러 마음먹기까지가 힘들지 막상 오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브레히트도 연극은 재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연극이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현재 한국 연극이 너무 '가벼운' 탓일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작년의 공연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연극은 한번 친근해지면 강한 끌림이 생긴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연극계보다 다른 예술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 연극이 쉽고 재밌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어떤 연극인은 이것이 연극이 맞느냐는 질책 섞인 말도 하였다. 대중성을 한 번에 확보하기 어렵지만, 이성적인 관객이 관심을 가진다면 저변의 확장은 일정 부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2016년도 연극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 - 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 공연사진 ⓒ 임형진


Q. 현재 준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ㄴ 14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올린다. 브레히트의 대표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름이 알려진 것만큼 많이 공연되진 않았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어머니' 역을 구하기 힘들어서였다. 실제 어머니 역을 맡을 만한 나이 든 여배우들은 배우 활동에서 경력 단절이 된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어머니(억척어멈)는 평화를 바라지만 정작 전쟁 때문에 먹고 산다. 이 과정에서 자식들을 잃는다. 이런 아이러니가 우리의 일상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억척어멈은 아버지가 각기 다른 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작품에 대한 얘기를 배우들과 나누다 보면, 모든 문제는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극은 배우들 일상의 개인적인 얘기들을 대사화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Q. 브레히트가 가지는 이 시대의 가치나 혹은 재조명할만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ㄴ 브레히트의 작품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금서였지만 대학가에서 탐독하였다. 하지만 민주화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브레히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다가 최근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치솟는 실업률과 국가 부도의 상황 때문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현대사회에선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은 계속 이어져야 하고 이것이 브레히트를 버릴 수 없는 이유다. 


Q. 향후 계획은? 

ㄴ 포스트 드라마 연극을 계속할 것이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모두를 담아내길 희망하면서, 내가 배운 이론이 실제 무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고민하고, 이것들을 서로 연결할 계획이다. 결국,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며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우리의 연극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 facebook
  • twitter
  • kakaostory
  • google plus
댓글쓰기 |
등록
취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