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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문화뉴스] 플레이투스테이지 - 전통음악을 보존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국악단 소리개 이영광 단장
작성자플티작성일2017-08-16
조회87HOPE 1

(사)민족음악원 악장을 거쳐 지금은 (사)국악단 소리개의 단장으로 국악을 알리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영광 단장을 만났다. 


* 플스 74회 방송 바로 듣기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ㄴ(사)국악단 소리개의 단장이며 상쇠를 맡고 있다. 남사당놀이 바우덕이로 유명한 안성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풍물을 가까이 접하며 성장했으며 판소리와 대금을 하셨던 조부님과 어머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전공을 하진 않았고 영문과에 입학하여 평범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우리 것 되찾기에 대한 움직임이 크게 일던 시기였고 나 역시 탈춤반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면서 사물놀이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대학 시절 계룡산에서 펼쳐진 ‘대동장승굿’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풍물꾼들이 500명 이상 모여서 함께 연주했다. 그때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집단신명의 전율을 느꼈고 아직도 충격과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가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졸업 후에 사물놀이 ‘몰개’라는 단체를 창단하였으며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안성 남사당의 상쇠였던 (故)김기복선생님, 장구의 명인이셨던 (故)전수덕선생님 그리고 사물놀이의 원년 멤버이시며 비나리, 꽹과리의 명인이신 이광수 선생의 제자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국악단 소리개 이영광 단장


Q. 우리나라 사물놀이의 역사에 대해서 말해 달라. 
ㄴ 사물놀이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모태인 풍물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풍물놀이는 마을 굿 형태로 놀이와 제의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하며 삶의 깊은 곳에 뿌리를 둔 생활양식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3~40명의 대규모 풍물 인원을 동원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풍물이라는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 변화한 공연양식이 바로 사물놀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징, 장구, 북 4가지 전통타악기로 구성된 연희 형태로 1978년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렸던 '제1회 공간 전통예술의 밤'의 한 프로그램으로 처음 선보였다.

반응이 좋아 이후에도 공연을 펼쳤는데 공연이 끝난 후 민속학자 심우성 씨가 이들의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하며 '사물(四物)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물이란 원래 불교 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이 공연 이후에 사물놀이의 4가지 악기인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대규모 풍물이 소규모로 실내공연양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에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예전에 풍물패가 유랑하러 다닐 때면 마을에선 빈방을 제공했고 그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연습하듯 가볍게 맞춰보던 습관이 있었다.
그것을 앉은반이라 불렀고 앉아서 소규모로 연주하는 형태는 씻김굿이나 동해안 별신굿에서도 보인다. 어느 정도는 그 양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김덕수 사물놀이가 많이 알려졌지만 원년에 함께 했던 멤버는 비나리의 명인이자 선반의 상쇠를 맡았던 이광수, 앉은반 상쇠를 맡은 김용배, 북과 징을 맡았던 최종실, 그리고 장구를 맡은 김덕수 선생 이렇게 네 분이 사물놀이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 


Q. 사물놀이의 악기와 공연형태에 관해서 설명해 달라.  
ㄴ 앞서 말한 것처럼 악기는 4가지이지만 소리는 5가지가 난다. 장구가 궁편과 열 편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크게는 쇠로 된 것과 가죽으로 된 악기로 나뉘고 5가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다.

장구는 통의 모양이 허리가 잘록하다고 하여 세요고(細腰鼓) 또는 요고(腰鼓)라고 불리는데 한쪽은 노루가죽이고 다른 한쪽은 개가죽을 쓴다. 그래서 노루장(獐)자에 개구(狗)자를 사용해 장구(獐狗)라 한다. 우리나라 타악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울림판이 안으로 살짝 꺾여있는 둥근 모양이라는 것이다. 서양의 종은 울림판이 바깥으로 휘어져 있고 때리는 공이 안에 들어있는 내타식이다. 직선적인 울림이 된다. 이것과 다르게 우리나라 타악기는 바깥에서 치고 울림판이 안으로 꺾여있다. 안에서 한번 돌아서 나가는 소리다. 마치 발효 음식처럼 한번 삭혀서 나가는 것과 같다. 이는 모든 것을 어우르고 포용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사물놀이공연에서 선보이는 것은 주로 4가지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비나리, 장구 중에 가장 으뜸이 된다는 3도 설장구, 웃다리 풍물, 호남풍물, 경상도 풍물을 하나로 모은 3도 사물놀이, 그리고 상모돌리기를 하는 선반 판굿이 있다. 우리나라 전국의 풍물 가락 중에 최고로 꼽는 것을 모아서 사물놀이공연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 판굿 공연사진


Q. 사물놀이 연주자들이 다양한 음악적인 시도를 해온 것으로 아는 데 어떤 것이 있었나?
ㄴ 내년이면 사물놀이 탄생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사물놀이의 공연자들은 단순히 풍물 가락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음악 작업을 시도해왔다. 

풍물 이후에 했던 작업이 바로 굿 가락이다. 경기 도당굿 같은 무속음악을 공연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사물놀이와 클래식교향악단과 협주한 ‘마당’(강준일 작곡)이란 곡이 있었고 국악관현악단과 협주한 ‘신모듬’ (박범훈 작곡)이란 곡도 대표적인 사물놀이 협주곡이다.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인 울프강과 만나서 재즈와 사물놀이의 만남을 시도했다. 선배님들이 이렇게 다방면으로 사물놀이의 가능성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나도 바이올린, 피아노 연주자 또는 탱고 음악이나 록그룹 등 다양한 음악적인 협연을 했다. 

여러 음악 장르 중에 가장 잘 맞았던 것은 재즈였던 것 같다. 아마 국악과 태어난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풍물이 야외에서 생겨난 음악이고 타악기 중심이다 보니 음악적인 한계를 느끼지는 않는가?
ㄴ쇠라는 악기는 일단 큰소리가 장점이지만 섬세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실내로 들어오면서 악기의 비율이 바뀌었다. 원래 꽹과리 1대에 장구 2, 북 2과 같은 비율이었는데 사물놀이로 발전하면서 각각 1대씩이 됐다. 예전의 야외공연 방식으로 연주하면 절대 공연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소리를 다스리지 못하면 연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다른 악기와 앙상블을 맞추기 위해서는 월등한 테크닉과 훨씬 더 섬세한 연주가 요구된다. 사물놀이 연주자들의 실력이 월등히 향상된 것이다. 
사실 예전엔 사물놀이가 멜로디 악기의 음악적 전달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타악기만 가지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Q. 해외뮤지션들 중에 우리 사물을 가지고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ㄴ 많이 있다. 약 8년 전 마닐라에서 열린 재즈페스티벌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재즈 퍼커션 연주자들이 우리 악기 중에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장구였다. 재즈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악기를 가지고 자기들 음악으로 소화하는데 그들이 아직도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장구다. 

우리나라 장단은 세계적으로 리듬의 패턴이 가장 길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물에서 가장 긴 장단은 49박인데 외국사람들에겐 어렵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복잡한 박자와 리듬을 옛날엔 다 우리 농민들이 가지고 놀았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음악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Q. 사물놀이를 통틀어 국악이 가진 매력이 무엇일까 
ㄴ 우리 악기는 자연을 닮았고 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소리를 낸다. 가야금의 경우만 봐도 평평한 바닥은 땅을 상징하고 위로 둥근 모양은 하늘을 닮았고 12줄은 12달 4계절을 표현한다. 1년을 나타내는 게 징이고, 춘하추동을 표현한 게 북, 장구의 궁굴편(궁편)이 12달을 상징하고, 24절기를 상징하는 게 장구의 채편(열편), 360일을 표현한 게 바로 꽹과리다. 소리의 특성도 천둥·번개를 닮은 것이 꽹과리, 장구는 비, 북은 구름, 징은 바람을 닮았다. 

자연에 가깝게 사는 인간을 표현하며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를 쓴다. 사물놀이를 예로 들었을 때 국악의 가장 큰 매력은 한 시간 배운 사람도 일주일을 놀 수 있으며 한 시간 배운 사람과 10년 배운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이다. 또 전기장치나 어떤 특별한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어울려 함께 놀 수 있다. 또한, 사람의 피를 돌게 만드는 음악이라고 한다. 풍물을 칠 때 보통 왼편으로 도는데 사람 몸속의 피의 흐름과 같기 때문이다. 소리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가게 되어있어 함께 돌며 연주하면 소리가 중앙에 모인다. 장단도 만중삭(慢中數)이라 하여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나간다. 사람이 만나서 놀 때 점점 흥에 취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상태가 머리를 흔드는 것(상모돌리기)이다. 이 모든 특징이 다 자연 친화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다. 


Q. 활동하고 있는 소리개라는 단체소개를 부탁한다. 
ㄴ소리개는 맷과에 속하는 새인 솔개를 뜻한다. 이 새는 40세 정도 나이를 먹으면 사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리와 발톱이 망가진다고 한다. 그럴 때 자기의 부리를 억지로 바위에 비벼서 낡은 부리가 빠진 뒤 새 부리가 나게 하고 그 부리로 발톱을 다시 물어뜯어 새로 나게 만든다. 다시 태어나는 갱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악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름 붙였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서명희 명창과 이런 고민을 하면서 2011년도에 설립하고 2013년에 사단법인으로 발전시켰다. 판소리와 사물놀이, 그리고 재즈가 만나 국악의 새로운 길을 고민하는 단체이다. 음악적인 외연을 넓히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 국악단 소리개 공연사진


Q. 소리개에서 했던 주요 공연프로그램이나 행사는 무엇인가? 
ㄴ소리개의 첫 번째 공연은 창작국악곡으로 구성된 ‘아곡은 여곡헐제 여곡은 아곡허니’ 라는 공연이었고 가야금과 설장구의 협연을 처음 시도하기도 했다. 재즈팀과 협업한 ‘국악 홀릭’을 했다. 우리 팀의 재즈연주자는 모두 국악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우리 인생을 표현한 ‘길’이라는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공연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2015년 ‘유라시아 친선 특급’의 전문 공연단으로 참가했는데 350여 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서 베를린 광장까지 20일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면서 거점 도시에서 했던 11번의 공연이다. 러시아 우수리스크라는 곳에 갔었는데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님의 위령비가 있었다. 너무 초라한 위령비 하나뿐이었는데 거기서 위령제를 해드렸다. 가면서 고려인들도 많이 만났으며 우리 공연에 감격스러워했다. 물도 부족한 열차에서 먹고 자며 이동해서 고생스러웠지만 보람되고 뜻깊은 공연이었다.


▲ 목포 공연사진


Q. 사물놀이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ㄴ 먼저 대중화를 고민해야 한다. 국악의 리듬 패턴이 너무 어려워서 단순화시킬 필요도 있지만, 국악을 알리기 위해선 우선 교육이 필요하다. 

이 교육은 단순한 체험형태가 아닌 전문연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전문국악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꼭 국악 연주자를 양성하지 않더라도 외국인들이나 프로연주자들에게 우리 음악을 가르쳐야한다. 그래서 외국뮤지션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국악적인 것을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2011년 이란에서 열린 ‘국제전통연극제’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페스티벌 리플렛 표지가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였다. 왜 그걸 표지로 썼는지 물으니 그들은 노(能)가 세계 전통극의 원류로 알고 있었다. 추가로 들은 얘기인데 일본은 자국 문화의 세계진출을 위하여 공연단체만 해외로 나간 것이 아니라 학술팀을 함께 파견한다고 했다. 공연과 이론을 병행함으로써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하고 학술지 같은 기록물을 남겨두고 온다는 것이다. 우리도 일회성의 공연 교류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국제교류 관계를 형성하고 업적을 쌓아갈 수 있어야 한다. 


Q. 그 과정에서 우리 국악인들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ㄴ 사실 지금 우리의 문화는 지리적으로 대륙의 끝에 주머니처럼 모여서 형성된 것이며 여러 문화적 원류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자기 것에 대한 고집보단 오픈된 마인드가 필요하다. 국악은 ‘구전심수’라는 말이 있다. 입으로 전달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새롭게 국악계에 입문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일단 칭찬을 많이 해주고 싶다. 우리보단 습득이 빠르기 때문이다. 사실 요새는 환경이 좋아졌다. 난 예전에 장단 하나 배우기 위해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요새는 인터넷으로 인해 정보가 열려있다. 그래서 반대로 우려되는 것은 너무 쉽게 배우고 쉽게 잊는 것이다. 국악을 장려하는 국가 시스템과 지원금도 예전보다 많아졌으니 공연 만들어 올리기도 좋아졌다. 그래서 쉽게 공연을 올리고 말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진정 가슴으로 음악을 전달해야 한다. 자연 친화적이고 오감을 전달해야 하는 게 국악이기 때문에 오래 공부하고 뿌리를 단단히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음악에 대한 자기 정체성과 토대를 튼튼히 하려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 음악의 완성은 앞으로 30년 후라고 생각한다. 지구력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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