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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상처를 받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희망이 담긴 고전극 2017-02-05 15:48:13
publicage 조회2,514

작년 체호프의 [챠이카]를 관람하고나서 안톤체홉학회와 전훈 연출가님의 팬이된 관객으롯서 이번에 체호프의 고전 작품인 [바냐삼촌]의 상연 소식을 듣고, 대학로 거리 공연이 한창이던 10월 8일 토요일 4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 아트씨어터문을 찾았습니다. 정년퇴임을 맞아 요양을 위해서 전처의 장원으로 내려온 노교수와 그의 아름다운 두번째 부인으로 인해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죽은 동생의 영지를 돌보며 어머니와 조카와 함께 살던 바냐는 위선자이자 허세가 가득한 매형의 등장에 심사가 불편하고, 시골 의사로서 열정을 잃은채 보드카와 숲의 관리에만 신경쓰던 아스뜨롭, 자신을 향한 마을 남자들의 구애와 따분한 일상에 지겨워 하는 앨레나등 체홉 특유의 독특한 캐릭터들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130분의 시간이 금새 지나갔을 만큼 독특하고 멋진 고전 연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장면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노교수를 향해 참았던 울분을 쏟아내며 총을 쏘는 바냐의 거친 행동과 그런 처제의 행동조차도 거짓과 허세에 가득찬 행동으로 용서하며 [사람은 일을 해야 합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기며 떠나는 교수, 넋이 나간 삼촌을 위로하며 창문을 닫는 쏘냐의 자상함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연극이 없으면 인생도 없지!]가 챠이카의 명대사였다면, 아스뜨롭이 떠나는 앨레나를 향해 작별의 키스를 하며 [연극은 끝났다.]고 되뇌이는 부분이 한폭의 그림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안톤 체홉의 작품은 챠이카에 이어 이번 바냐삼촌이 두번째 관극이었습니다. 고전이라면 셰익스피어밖에 몰랐던 제게 두 작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의 캐릭터들의 모습은오늘날의 현대인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우님들의 열연과 객석과 상당히 가까우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대를 바라보면서, 사람은 때로 누군가의 삶의 희망이 되고, 존재만으로도 상처를 입고 입히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느꼈습니다. 수많은 극단에 의해 회자되는 체홉의 작품들이지만 연극 마니아는 물론 처음으로 예술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 모두가 공감할 수있는 쉽고 재미있는 고전 연극으로서 강추합니다. 직접 커피를 내주시며 관객의 감상에 친절히 대답해 주신 연출가님과 배우님들의 친절 오래도록 가슴속에 담아 추억하겠습니다. 이자리를 빌어 극단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연극 바냐삼촌이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사랑과 호평속에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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