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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적 세계관 '바냐 삼촌' 2017-02-16 18:09:26
그냥커피 조회3,561
요즘은 연극 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 연극을 통해 또 다른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 같아 재미를 더해준다.
얼마 전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안톤 체홉의 연극을 보게 됐다. 필자의 경우 국내 창작극부터 시작해 연극 보는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겁나게 많이 보는 것은 아님 ㅡ.,ㅡ... 그저 말이 그럴싸할 뿐임!) 고전이라 불리는 부분까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연극계에서는 안톤 체홉의 작품은 굉장한 바이블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문학과 거리가 먼 이공계열 출신의 필자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분 중에는 안톤 체홉의 희곡을 읽어 본 분들도 계시다고 하니 본인의 이 무식함을 어찌해야 할지 창피하기 그지없기도 하다.
[안톤 체홉과 작품세계]
안톤 체홉의 고향 '타간로크' 항구
안톤 체홉(1860년 1월 29일 ~ 1904년 7월 15일, 러시아의 의사, 단편 소설가, 극작)은 흑해 위쪽의 아조프 해 연안의 항구 도시 타간로크 출생이다.
부친은 조그마한 채소가게를 했다. 체홉은 어릴 때부터 가게를 도왔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그는 문학 창작에 열중했었고 장성해서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과에 입학한다. 1892년, 교외에 저택을 사서 양친·누이동생과 함께 살게 되며 의사로서 이웃 농부들의 건강을 돌보거나 마을에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이런 그의 경험은 그의 희곡 ‘바냐 삼촌’에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지난번 리뷰한 '날개잃은 천사'에서 분석한 적이 있지만, 작가 톨스토이와 동시대를 살았던 안톤 체홉의 작품은 톨스토이의 청교도적인 시선과는 달리 19세기 말의 러시아의 태만한 환경에 반항하면서도 스스로는 아무런 의욕을 갖지 못하는 인물과 감정에 목말라 하는 인물들을 대립시키며 사실적인 일상을 표현한다.
체홉의 희곡은 일상생활의 무질서를 그대로 무대에 옮긴 듯한, 이른바 극적 행위를 직접적 줄거리로 삼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회화극을 탄생시킨다. 당시 러시아나 외국에서는 그런 그의 작품을 '염세적 인생관을 반영한 러시아 귀족사회에 대한 애도의 노래'로 평가하기도 했으나, 정작 체홉 본인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비극적이고 사실을 그대로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계산된 극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안톤 체홉
[바냐 삼촌과 엔트로피의 법칙]
이번에 보게 된 작품은 '바냐 삼촌 (바냐 아저씨)'이다.
안톤 체홉의 대표적 희곡 중 하나이며 그의 희곡 작품 중으로는 초기 정도에 위치해 있는 듯하다. 1883년 단편으로 시작한 안톤 체홉은 약 1895~6년 경 발표된 희곡부터 1903년 너머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바냐 삼촌은 1889년에 집필한 자신의 작품 "숲속의 정령"을 각색해 1899년에 출판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언제 정확히 집필되었는지, 그리고 언제 수정되었는지는 정확하진 않다고 한다. 다만 최근 학계에는 안톤 체홉이 1891년 러시아 동부의 사할린 섬을 여행하는 동안 각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위 안톤 체홉의 작품 세계의 분석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의 작품은 일상의 무질서를 그대로 무대로 옮긴듯하다.
체홉의 분석서에서는 이를 '사진적(寫眞的)인 모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을 그대로 투사해 만든 삶의 모방이란 뜻이다.
필자는 이를 이공계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삶 속에 녹아있는 엔트로피 법칙 세계관의 모사"라고 말이다.
물리학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하고 고유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변형하고 사용하면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을 반대로 거꾸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모든 자연현상과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사회질서는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된다는 것이다.
Example for entropy theory
'바냐 삼촌'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그들의 그것의 마찰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계와 감정의 진폭이 커지며 극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무질서와 혼돈의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모든 인물은 감정이 수평이 되는 상태 또는 수평처럼 보이는 상태로 끝맺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결국 이런 물리 법칙을 거스르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고스란히 그것을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질서정연한 듯 보이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삶의 요소들 하나하나는 점점 넓어지는 진폭으로 우리가 일궈놓은 삶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에 이르러는 그 넓어진 진폭은 더는 펼쳐질 수 없는 직선처럼 삶에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극의 마지막 대사인 '우리가 이승에서 받은 고통을 천사들이 보답해 줄 거야. 평화롭고, 부드럽고, 달콤한 포옹과 함께... 이승에서는 맛보지 못한행복...'는 우리 삶 속의 엔트로피 법칙의 종결점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연극 '바냐 삼촌', 시놉시스 그리고 명대사]
결론적으로 이 연극 굉장히 재미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열된 감정은 실에 구슬을 꿰듯 각자 인물들을 통해 서로 연결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인위적인 장치를 통해 극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대사를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는 갈수록 흥미롭게 다가오며 각각 인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그 속에 잘 녹아내어 져 있다.
배우들의 목소리 톤과 호흡, 무대 의상과 무대 장치는 일관된 하나의 콘셉트로 이뤄져 있어 잘 만들어진 미술작품처럼 느껴진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정년퇴임을 한 교수는 젊은 둘째 부인 '엘레나'와 함께 그의 시골 영지에 요양차 내려온다. 그곳은 원래는 사망한 그의 첫 아내의 영지인데 장모와 처남인 '바냐', 그리고 그의 딸 '쏘냐'가 그 영지를 관리하고 있었다. 교수를 치료하는 의사 '아스트롭'과 '바냐'는 '엘레나'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이 연극에는 삶을 바라보는 안톤 체홉의 시선을 읽을 수 있는 명대사가 많이 나온다.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건 강도질이나 화재가 아니라 미움이나 증오 같은 사소한 것들이잖아요. 그러니 바냐 삼촌도 불평만 늘어놓지 말고 모두를 화해시키는 역을 맡아주세요, 네?" -2막 엘레나
"내 아내는 내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와 달아나 버렸어. 하지만 난 이혼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쪽 아이 양육비를 보내며 재산을 다 썼지만 내 본분을 어긴 적이 없이 이렇게 자존심은 남아 있어. 그런데 내 아내는 어떻게 되었는 줄 아나? 인간이라는 게 다 별수 없지. 늙어서 미모는 사라지고, 애인은 죽고.... 도대체 뭐가 남았지? 어떤 것이 아름답지?" -1막 망한 지주 뗄레긴
연극 '바냐 삼촌' 팸플릿
[연극 ‘바냐 삼촌’]
* 작_안톤체홉, 번역,연출_전훈
* 출연진
김병춘, 김샛별, 김진근, 진남수, 이규빈, 홍정인, 유태균, 조환, 이재혁, 조경미, 김두영, 장희수

[체홉의 대표작]
단편
〈관리의 죽음〉(1883)
〈우수〉(1885)
〈키스〉
〈사랑에 대하여〉
〈귀여운 여인〉(1898)
〈약혼녀〉(1902)
〈개를 데리고 있는 여인〉(1899)
〈카멜레온〉(1884)
〈초원〉(1888)
〈6호 병실〉 (1892)
〈사할린 섬〉(1890)
〈아리아드나〉
〈결투〉(1892)

《이바노프》
《갈매기》(1896)
《세 자매》(1901)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1903)
《곰》

*플티 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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