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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 녹여낸 감칠맛, 뮤지컬 '루나틱' 2017-04-14 17:53:22
그냥커피 조회2,584
[편견]
그래 그랬었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뮤지컬 '루나틱'은 혜화동에서 공연된 지 무척 오래된 뮤지컬이었었고 개그맨 백재현이 연출했었던 것으로 유명했었더랬다.
자료를 찾아보니 2004년 1월부터 공연했었다고 한다. 벌써 13년 이상 된 나이 든 창작 뮤지컬이다.
백재현은 당시로써는 혁신적이었던 '개그콘서트' 포맷을 고안했었고 개그맨으로서도 유명세를 떨치던 때였다. 그런 그가 연출로 뛰어들면서 대규모 극장에서만 공연되던 뮤지컬을 소극장으로 끌어들여 만든 것이 바로 이 '루나틱'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3가지 혁신 (개그 포맷 전환, 개그맨의 뮤지컬 연출, 뮤지컬의 소극장화)을 끌어낸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필자가 '루나틱'을 지금껏 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바로 그 '개그맨'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해 꺼내놓고 보니 부끄럽기만 한 편견으로 가득 찬 소치이다.
연출가 '백재현'
[lunatic]
일단 '루나틱'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lunatic : [명사] 미친, 발광한, 정신 이상의, 어이없는, 미치광이 (같은 사람)
luna(r), 즉 '달의, 태음의, 달의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뜻에서 파생된 lunatic은 점성술에 의지했던 시절, 어둡던 밤 동안 신비롭게 빛나는 밝은 달빛이 수면을 박탈해 정신병을 끌어낸다는 믿음에서 파생된 라틴어 계열의 재미난 단어이다. 적어도 1700년까지는 달이 발열, 류마티스, 간질 및 기타 질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일상에서 마주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은 평범한 삶을 바꿀 수 있는 건강과 종교로, 그리고 그들이 쓰는 언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단한 존재로 다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안톤 체홉, 닐 사이먼, 그리고 루나틱]
이 작품은 미국 희극작가 닐 사이먼이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콩트들을 기본으로 엮은 '굿 닥터'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그중 세 개의 에피소드를 각색했다.
닐 사이먼의 작품들은 무척 상업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작품 속에 묻어있는 페이소스가 주는 감칠맛 때문이며 대중을 울고 웃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영미 희곡의 이해』에서 정진수씨는 닐 사이먼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사이먼은 현대 미국인의 고독과 소외와 좌절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으면서도 삶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재치 있는 유머와 희극적 상황을 꾸며내고 종국에 가서는 해피엔딩을 도출해 냄으로써 통속극의 작가가 되는 길을 열었다. (중략) 그의 희곡은 기성의 가치관에 안주하는 중류 계층 관객들에게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을 선사함으로써 그들과 타협하고 있지만, 그 해피엔딩이 작위적이고 안이하게 조작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제기된 문제들을 말끔히 해소시켜주는 근원적 처방으로 느껴지지도 않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공감을 상당 부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때문에, 소심한 인간군상을 다룬 '굿 닥터'의 이야기 속에서 에피소드를 녹여내 다룬 루나틱은 원작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현대인의 삶 속 소외와 좌절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을 뮤지컬을 보고 나면 잔잔히 느낄 수 있다.
닐 사이먼 형제, 오른쪽이 닐 사이먼
[시놉시스 그리고 루나틱의 맛]
뮤지컬 <루나틱>은 무대가 정신 병동이다.
여의사 '굿 닥터'는 정신 병동에 수감 된 환자들을 상황극 재연을 통해 정신질환을 치료하려고 한다.
환자들의 상황극은 사랑, 고독, 꿈, 좌절을 통해 비정상적인 현시대를 재조명한다.
뮤지컬 루나틱은 소셜커머스와 공연기획을 하는 이엘프러스에서 기획 제작하고 있다.
말 그대로 부정할 수 없는 상업 극이다. 그 프로세스가 가진 일장일단은 둘째로 하자.
오랜 기간 공연된 만큼 이 뮤지컬은 정제된 맛을 지녔다. 숙성된 만큼 뮤지컬의 흥을 졸여내 액기스의 즐거운 맛을 끌어 올렸다.
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을 끌어야 하니 자극적인 맛도 강하다.
공연 시작 전 객석과 호흡을 맞추는 루나틱 출연 배우들
소극장 뮤지컬의 시초를 알리며 창작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기나긴 내공만큼 무대를 휘두르는 배우들의 연기 속엔 자신감이 배어 있다.
미친 세상에 사는 우리는 정상인지, 아니면 정상인척 하며 사는 것인지.. 그리고 이 미친 세상 속에서는 누구도 정상인일 수 없으며 내가 미친것이 아니라 세상이 미친것일 수도 있다고 노래하는 그들의 시니컬한 보이스는,
국가가 만든 비정상을 국민의 탓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이, 경외심으로 출발되었던 달에 대한 두려움을 정신병의 원인으로 만들던 과거의 그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게 느껴져 마냥 즐거움으로 들을 수 만은 없어 고갤 젖히며 씁쓸한 한숨을 토해내게 만든다.
<루나틱>
기획 제작 : 이엘프러스 02-6403-7117
출연 : 최수연 , 이주영 , 이채비 , 김도신
루나틱 포스터

* 플티 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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