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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 리뷰 번지점프를 하자! 2017-06-08 15:22:44
딱따구리 조회2,930



매일 40여명이 대한민국에서 삶의 끈을 스스로 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은 삶 때문이 아닐까. 연극 <번지점프>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은 삶을 스스로 끝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목만 듣고 가면 청량미 터지고 싱그러움과 동시에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극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난 제목 보고 소년만화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번지점프>은 찌질함과 궁상, 그리고 노숙미(?)가 터지는 연극이다. 아주 찌질함 폭발이다. 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찌질함 터지는 스토리를 좋아하는지라 이 극이 참 재밌었다. 재미 뿐만 아니라 그 속 20-30대는 물론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꽤나 밝았다. 자살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지만 사실 아프게 자살하는 게 싫은 노숙자는 자살 방법마다 토를 달고, 고시생은 아무 생각 없는 듯 보인데, 고삐리는 뭐가 그리 불만이고,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지... 사실 듣고 있으면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 맞나 싶었다. 하지만 이들의 그 목소리가 사실은 자살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특히 뉴질랜드에서 대자연 앞에서 줄 없이 번지점프를 하며 자살하고 싶어하는 고삐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자살을 하고 싶은게 아니라, 세상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어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살하겠다는 사람들이 전혀 미워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통해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나도 틈만 나면 여행가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사니...

이야기는 나중에 청와대를 터는 것으로 가지만 사실 나는 청와대를 터는 것보다, 털기 전 이들의 대화와 털고 나서 폐지 줍는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훨씬 인상 깊었다. 특히 세 남녀가 같이 술을 마실 때. '생존포기'라는 말을 하는 노숙자의 말이 참 먹먹했다. 정확한 대사를 기억하려고 애썼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아쉬울 정도... 자살이라는 건 삶을 사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게 아닐까. 포기는 '포기', '포기가 아니면'이라는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포기가 아니면'의 선택이 지금보다 더 처절할 때 우리는 '포기'라는 선택을 한다. 그래서 '생존포기'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무서움은 남달랐다. 그 무서움을 맘에 이미 달고 있는 사람들이라 아마 청와대를 털자는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자살이라는 지독하게 무서운 무게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삶에 대해 뭐가 좋은지 모른체 살아가는 삶은 언제든 금방 자살을 마주할 수 있다. 그때 폐지 줍는 할머니를 만났다. 언제나 느리고 더러운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새파랗게 젊은 세 남녀의 자살을 보며 혼내는 장면은 어쩜 그리 속시원한지~ 그리고 그 할머니를 통해 바라보는 삶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또는 비교당하는 삶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고, 그 속도에 맞게 걸어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것이니 그 속도에서 더 빨리가면 넘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나의 속도로 살라는 것. 참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나도 눈망울이 촉촉해지던지...

극 마지막, 고삐리가 다시 말한다. 뉴질랜드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고. 이번에는 줄을 잘 매달고 제대로 뛰어내리고 싶다고. 여기서 극의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번지점프는 죽음을 연습하는 행동 중 하나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줄을 끊지 않는다면 하나의 스포츠고 즐거움이며,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우리의 인생처럼.

* 연극은 참 즐거웠는데... 고삐리 역할의 여배우분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라 솔직히 조금 힘들었다. 톤을 조금 더 낮추고 차분하면 좋지 않을까... 목소리가 자꾸 갈라져서 듣는 내내 귀가 조금 고통스러웠다...
** 할머니 역할의 여배우분은 정말 놀랐다. 할머니 역할이 목소리도 목소리고 그 억양을 흉내내는게 쉽지 않은데 너무 자연스러웠고 대사 전달력도 너무 좋아서 우리 할머니 보는 듯 했다.


본 리뷰는 플레이티켓 리뷰단 고소현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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