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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과 가식 속 연극 “이방인의 만찬 – 난민연습” 2018-11-21 04:29:18
볼 푸른 갱년기 조회2,362
이 연극은 얼마 전 많은 이슈를 불러왔던 제주 예멘 난민을 다루는 연극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것을 바라본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뭐 쉬운 주제도 아닐뿐더러 머리가 좀 복잡한 이야기겠거니 싶다.
어쨌거나 연극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때 그 사건을 한 번 되돌아보자.
<난민이라는 벌집, 그리고 공포>
평소 어딨는지도 잘 모르는 국가의 생뚱맞은 난민 문제가 뜬금없이 사회문제로 주목받으면서 찬성 반대의 흑백 즉결처분 여론전으로 첨예하게 대립 됐으며 박애주의와 극우포퓰리즘으로 폄하된 인권과 보수적 가치의 대립과 충돌, 각종 연합이나 부대 같은 정치 깡패의 개입으로 인한 정권 흔들기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국 사회는 벌집을 건드린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필자와 주변인들도 이런 극단적 대립을 쉽사리 경험할 수 있기도 했으니 편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주제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국가의 난민에 대해 그리도 극렬히 대립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공히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한심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은 무지에 의한 근본적 공포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르는 이유에서이다.
예멘 난민 찬반 집회
<양키의 초콜릿, ‘공포 프레임’>
내연기관의 발전으로 석유자원 확보가 국가 권력의 지위를 좌우함을 알게 된 서구 사회는 매장자원을 가진 국가의 테러단체나 반체제단체를 지원하며 국제사회의 공포심과 혼란을 일으키고 이슬람 문화를 비판하고 배척해 국제적 고립을 야기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원확보 루트를 확보하고 강화한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 프레임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부풀려져 전 세계에 확산되어 갔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도 쇄국정책으로 폐쇄됐던 한국인들의 내면에 잠재된 타 문화에 대한 두려움은 양키가 던진 초콜릿처럼 군사정권의 공포 정치와 함께 대중들 사이사이 강력한 프레임으로 잠식되고 만다.
우습게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만 쓰면 잡혀갈지도 모르는 세상이었으니 뭐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예멘, 난민>
예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의 대리전이 격화되면서 예멘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국가를 탈출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목숨 걸고 도달한 곳은 제주도였다.
골치 아픈 것을 거둬내고 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불과 이렇게 두세 줄이면 정리되는, 말도 안 되게 가슴 아픈 현실이다.
부숴진 예멘
<연극 속으로>
연극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연출은 인류애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위한 연극을 올리기 위해, 난민 중 몇 명을 만나고 배우와 함께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연습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위선 또는 공감>
앞서 썰을 풀었듯 필자가 어떻게 리뷰를 써야겠다라는 예측을 자연스레 하게 된 것처럼 연극 역시 예멘 난민에 관한 연극이라면 어떤 결론에 이르겠다는 선입견을 연출자 스스로 자각하며 연극이 시작된다.
출연하는 배우들과 연출은 역할을 바꿔가며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며 연극을 하나하나만들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성 틀에 맞춰 가식적으로 답을 내며 바라본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일종의 ‘책임의 강박에 따른 지적 편견의 반작용’ 같은, 지식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으레사고해야 할 무의식적 행동이며 자신의 평소 모습과는 무관하게 표출되는 의도적 행동패턴, 즉 ‘지적 가식’ 같은 것을 이 연극에선 가차 없이 드러내며 틀을 허물어 낸다.
모순과 아이러니로 뒤덮인 자신과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예멘 난민으로 제기된 “과장된 공포와 혐오, 공감의 진실성, 강박과 가식 간의 연관작용”은 입장을 바꿔보고 공감해 보려 해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적 인식임을 각성한다.
연극의 대찬 질문에서 만들어진 이율배반적인 카타르시스이며 허영에 대한 처절한 반성의 귀결이요 공감에 대한 의지의 중요성을 던져주는 시대적 메시지다.
연극 "이방인의 만찬 - 난민연습" 포스터
덧붙여.
<삼일로 창고극장>
이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은 삼일로 창고극장이란 곳이다.
1975년 명동 골목 언덕에 단원들이 곡괭이로 파서 만든 극장은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8년 동안 올리며 소극장 운동을 확산시킨 공연 예술계의 상징적 극장이었다.
재정적인 이유로 여러 차례 사라질 뻔 하다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서울문화재단의 위탁운영으로 리노베이션 되며 얼마 전 재개관한 되었다.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됨을 축하해야 할 듯하다.
삼일로 창고 극장

* 플티 리뷰단 이재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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