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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해도 네 편, 실패해도 네 편. 부모란 그런 거야. 2016-06-15 11:07:31
구로동요조 조회2,731

6월 10일 금요일 오후 8시 공연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연극 포스터에 쓰여져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는 문구. 저 문구를 떠올릴 때면 인간사에 펼쳐지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친구와의 우정. 연인과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동물과 인간간의 설명할 수 없는 우정 등등. 그러나 이 중 가장 애틋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형태를 띠고 있는 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일 겁니다. 연극 동치미는 그러한 부모의 사랑을 부모의 시점에서 자식들에게 보여줍니다. 부모가 나를 위해 희생하며, 나를 위해 조건없는 사랑을 쏟아준다는 것을 알지만 어렴풋하게,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채,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들은 나를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듯이 행동해왔던 것은 아닌지 연극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한 없는 사랑을 다루는 연극들을 떠올려 볼 때 친정엄마, 엄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은 많으나 아빠를 그 사랑의 주체로 내세운 연극은 쉽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이라고 말할 때 대다수는 엄마의 희생, 엄마의 사랑이라고 연결지어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쩐지 아빠는 내 삶에 가까운 존재라기 보다 무뚝뚝하고 무서운, 가까이 가기에 먼 존재라고 여겨지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한 점을 영리하게 노려서 연출한 것인지 모르지만 동치미는 다수가 알고 있는 엄마의 희생, 엄마의 사랑 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말보다는 행동인 아빠의 숨겨진 사랑의 모습들을 내세워 보여줍니다.

“세상 애비들의 정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꾹꾹 담아뒀다가 때 되면 행동으로 두 말 없이 실천하는 것이 애비고 사내들이다.”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였던 아빠가 말이 아닌 그 행동에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의 그 충격.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는 연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빠와 엄마의 회상 장면에선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평생 땀흘려 고생해서 마련한 집 한채를 자식의 간곡한 부탁으로 보증으로 세웠다가 날리고.. 그 상실감이 정말 어마어마할텐데... 되려 자식을 위로하는 부모의 모습. 집을 팔고 남은 돈으로 남은 빚을 갚으라며 손에 통장을 쥐어주시는 모습.. 시련이란 신이 포장으로 감춰놓은 축복이라며, 마지막에 웃고 있는 자가 진짜 승자라고 위로해주시는 그의 모습. 술에 취해 비틀비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아들이 업는 그 장면에선 정말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언젠가 내 부모님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을 때 느끼던 그 이질감. 많이 늙으셨구나... 어느새 이렇게 많이 늙으셨지? 어렸을 땐 엄청 큰 거인처럼 느껴졌는데 이젠 나보다 작은, 여린 모습을 보고 가슴이 콱 막히는 그런 기분. 그런 마음이 흘러넘쳐서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참으로 이 연극은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던 꽁꽁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자식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 그 동안 표현하지 않아 익숙치 않은 행동이지만 아내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말은 가시돋힌 듯 하지만 알고보면 그들을 위해 하는 마음인 것을..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게 된 어느 시점부터 여기 저기서 훌쩍이며 울음을 참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모두의 마음을 울릴만큼 호소력있는 연극이라는 반증이 되는 것이겠죠.

연극을 다 보고난 후, 남자친구와 맥주 한 잔 하면서 연극을 보고 느낀 바를 나누었습니다. 남자친구도 저도 느낀 바가, 깨달은 바가 많더라구요. 연극을 보고난 후, 이해되지 않았던 아빠의 행동이라던지 도대체 알 수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극을 다 보고난 후, 내 자신에 대해서. 우리 가족에 대해서.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오해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고, 잘못 생각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식으로 노력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네요.

다음 번에 동생들과 부모님 모시고 다시 한 번 연극을 볼 생각입니다. 역시 8년동안 롱런하는 이유가 있는 연극이었습니다. 막내 딸을 맡으신 배우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이 부모님과 함께 보는 그 날까지 쭈욱 공연해주세요!


http://blog.naver.com/wang5523/22073354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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