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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플레이투스테이지 - 위기의 금산농악을 무형문화재로, 미래의 콘텐츠로... '뿌리패예술단' 전인근 대표 2016-12-12 11: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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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공연을 소개하고 공연을 이야기하고 공연을 만나보는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뿌리패예술단 전인근 대표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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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뿌리패예술단과 주요공연연혁에 대해 설명해달라.
ㄴ 뿌리패예술단은 한국의 전통타악을 기반으로 1988년 4월 사물놀이 팀으로 창단하였고 2000년 전통예술의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과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림을 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전통공연 예술단체가 문화체육관광부 인가를 받은 것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전국 67곳에 광역, 시, 도 지부를 설치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전국농악경연대회 장원(1995년), 전국국악경연대회 장원(1995년), KBS국악경연대회 금상(1995년)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2008년엔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연희 지존으로 선정됐다.  

  
▲ 플스 38회 게스트. 뿌리패예술단 전인근 대표

해외수상 이력으로는 세계 67개국이 참가하는 북경 세계 문화예술 축전에 한국대표로 선발되어 대상을 수상하였고(2000년), 뉴질랜드 아시아 민속 페스티벌 대상(2001), 베네수엘라 세계 드럼 페스티벌 대상(2004년)을 수상 하였다. 

공연은 국내 공연도 많았지만, 해외 80여 개국을 400여 도시를 순회하며 600여회의 공연을 한하였다. 세계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나라를 돌아다닌 것이다. 잘사는 나라보단 우리를 환대해줬던 다소 낙후된 나라에 갔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30년을 지내면서 우리 음악의 다양성과 새로운 소리를 디자인하며 대한민국 대표 타악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Q. 어떻게 하다 국악계에 입문하게 되었나? 
ㄴ 국악에 정식 입문한 것은 10살 때였다. 할머니께서 가야금과 장구를 다루셨기 때문에 더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고 더불어 전통예술의 명인분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금산농악을 가르친 시범학교여서 10살 때 첫 공연을 한 것이 데뷔공연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 국악을 접한 것은 7살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린 나이부터 국악에 입문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 당시엔 드문 일이어서 여러분의 명인들에게 배울 수 있었다. 우선 금산농악 명인이신 박희중 선생님으로부터 금산농악을 배웠고 이후 김병화, 김봉렬, 정인삼 선생님에게 사사하였다. 송순갑선생님과 이수영 선생님으로부터 웃다리농악과 남사당 농악, 고사 소리를 사사하였고 유지화 선생님으로부터 우도농악, 김병섭 선생님께 설장고, 전수덕 선생님께 사물놀이를 배웠다. 


Q. 금산농악이 충남 무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되었다. 금산농악의 특성은 무엇인가?
ㄴ 금산농악을 설명하기 전에 호남농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농악은 좌도와 우도농악으로 나뉘는데 금산농악은 이 중 좌도농악에 속한다. 유명한 구례 전수농악도 호남 좌도농악에 속한다. 좌도는 방위상으로 호남의 동편에 속하고 우도는 서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지형적으로는 평야 지역은 우도, 산악지형은 좌도농악의 특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호남 좌도농악이 전승되는 중심지역은 충남 금산과 전북 무주, 진안, 장수, 전주, 임실, 남원, 곡성 등지를 꼽고 있으며 지역 특성에 따라 다시 금산, 무주, 진안, 장수와 같이 동부지역의 특성을 지닌 농악과 전주, 임실, 남원, 곡성과 같이 서부지역의 특성을 지닌 농악과 전남 화순, 구례, 승주 등지의 남부지역의 특성을 지닌 농악 등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며 다시 나눌 수 있다. 

금산농악은 마을굿, 송계대방놀이, 두레풍장, 천내배걸립굿 등 금산의 기층문화가 성장해온 다양한 요소들을 품고 있다. 

금산농악의 판굿은 지역적 특징이 강해서 음악·복장·진법·무용·연희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어 있다. 마을 농악이나 걸립농악의 한정된 지역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문화된 공연조직과 방식을 발전시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 활동을 한 경험을 가진 농악이다. 

금산농악 중 예술성이 가장 집약되어 표현되는 부분이 바로 판굿인데 판굿은 앞 굿과 뒷 굿으로 나누어진다. 무리를 리드하는 앞치배들은 음악적인 요소와 무용 적인 요소로 공연을 이끌어가고 그 뒤를 따르는 뒷치배들은 연희나 연극적인 형식을 주로 보여준다. 

구성원 전체가 전립(상모)을 쓰고 개인놀이 보다는 단체놀이에 치중하며 윗놀음인 채상놀이가 발달하였고 밑놀음인 가락은 담백하고 힘차며 전체적으로 가락과 동작이 빨라 가장 남성적인 농악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단을 맺고 끊을 때 분명한 특징도 가진다. 


  
▲ 금산농악 공연사진

Q. 금산농악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오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안다. 어떤 과정들이 있었나?
ㄴ 문화재 지정되기까지 30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금산농악은 금산의 금성초등학교와 금산농업고등학교(현 금산산업고등학교) 출신들에 의해 주로 계승되어왔다. 이들의 대다수는 금산을 벗어나 서울이나 타 지역에 가서 성장하였다. 전통예술단체의 타악주자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그 팀을 이끌어갔다. 국립국악원이나 국립국악관현악단 그리고 김덕수 선생님이 이끄는 한울림예술단의 타악주자들도 금산출신이었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금산에 계속 남아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이질감이 심해지다 보니 갈등이 생겼다. 그동안 국가문화재지정 신청이나 도문화재 신청이 여섯 차례 있었지만, 특정 단체에서 문화재 신청을 하면 다른 단체나 개인이 행정기관에 민원을 넣어 번번이 문화재 지정이 무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 신청과정에서 준비한 서류에 기재된 금산농악의 원형이 신청자들의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변형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금산농악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무형문화재는 전수자들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지역성과 전통성, 역사성 등이 포함되어있어야 한다. 이런 사태를 지켜보던 과정에서 더는 내버려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개인적인 욕심보단 전반적인 것들을 함께 평가받으며 금산농악에 대한 문화재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동안은 심사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에선 이러한 갈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신청자들은 금산농악의 보존보다는 서로의 욕심 때문에 싸우고만 있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금산을 바라본 민속학자들로부터 "금산농악이 충분히 국가 문화재지정도 가능한 가치를 가진 농악이지만 금산 내부의 트러블 때문에 무형문화재 등록이 안 되는 것이다"라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금산농악의 특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968년인가 69년에 금산군에서 발간한 군지에 이미 공식적으로 설명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제출한 문화재 신청 자료(1991. 1997, 1998, 2001, 2004, 2005년)들을 살펴보면 금산농악의 가치들이 신청자들에 의해 변형, 왜곡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싶은 생각에 2010년 11월 금산군청, 금산문화원, 금산농악보존회, 금산 좌도 풍물굿 보존회 등의 관계자들을 만나 금산농악 통합의 필요성을 설득하여 금산 농악 통합과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4차례의 토론회와 3차례의 조율을 걸치며 두 단체의 회원들과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금산 출신의 예술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금산 농악보존회라는 통합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후 2011년과 2013년에는 금산농악의 발전을 위해 한국전통음악학회, 서울대학교 동양음악 연구소 등의 교수와 학자들을 모시고 함께 학술회의 개최하여 그들의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금산농악의 문화적 가치를 재평가받고 지역성과 전통성, 예술성과 대표성을 확보해 2014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에 다시 도전하였다. 마침내 2016년 10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되었다. 

사실 이도 최종승인을 받기까지 오래 걸린 것이다. 그만큼 그동안 제출했던 자료들이 금산농악의 본질을 흐려 놓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금산농악보존회장의 자격으로 군수님께 문화재 인증서를 받았다. 그날은 금산인삼축제의 폐막식 날이었는데 보통 인삼 축제의 폐막식엔 군민 전체가 모인다. 군수님은 인증서를 주면서 조용히 내 귀에다 '정말 고생했다'는 진심 어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 여명 공연사진

Q. 금산인삼축제를 6년 정도 관여해 왔는데 내년에 더 큰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행사의 기본 개요와 주요콘텐츠에 대해서 얘기해달라. 
ㄴ 인삼 축제는 매년 해오고 있지만 할 때마다 발전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금산인삼축제는 매년 치러지고 있으며 그중 5년 주기로 엑스포를 개최한다. 이것은 지역축제를 벗어나 국제적인 행사가 되는 것이다. 

이미 2006과 2011년에 두 번 치러졌고 내년이 다시 그 엑스포가 열리는 해이다.

1.명칭 : 2017금산세계인삼엑스포 
2.주제 : 생명의 뿌리, 인삼(Ginseng, Root of Life) 
3.사업내용 : 전시, 이벤트, 교역, 학술, 체험 등 
4.장소 : 금산군 금산읍 신대리 국제인삼유통센터 일원 
5.기간 : 2017년 9월 22일(금) ~ 10월 23일, 32일간 
6.주최 :충청남도, 금산군 
7.주관 : (재)금산세계인삼엑스포조직위원회 


2017 금산세계인삼엑스포 행사장 구성은 주제영상관, 주제관, 금산인삼관, 국제 교역관, 체험관, 식물관, 생활문화관, 어린이 네버랜드, 푸드코트 등으로 구성될 것이다. 

특히 주제영상관의 경우 원형 돔 텐트로 구성하여 360도 서클홀로그램 형식에 공연으로 구성하여 준비하고 있다. 다른 행사에는 사각 텐트가 대부분인데 인삼엑스포에선 특별히 원형으로 제작하여 인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공연을 한다. 돔에 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서 공연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 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주제관은 인삼의 역사, 인삼의 가치, 인삼의 효능 등 과학기술을 접목한 수퍼푸드 인삼의 미래와 미래산업의 가능성 등을 보여준다. 관람객들이 다양한 인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금산인삼관은 금산인삼역사관과 과학관 생활관으로 구성하여 금산 인삼의 기원과 역사, 재배방법, 인삼의 종류, 인삼의 성분과 효능, 세계의 인삼 산업, 국내의 인삼 산업, 금산의 인산산업을 등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할 계획이며 인삼의 성분과 효능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은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여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인삼 무역 스토리를 보여줄 것이며 야외공연장에서는 32일간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우리나라 말고도 해외 10개국 정도에서 인삼 농사를 짓는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인삼은 이미 우리나라의 국가적인 특산품이며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식품이다. 이런 현상에 발맞춰 국제교역관을 만들 것이며, 건강체험관에서는 힐링마사지, 인삼테라피, 인삼과 뷰티, 인삼요리교실 등을 보여줄 것이다.


  
▲ 하늘마치 공연사진

Q. 금산농악과 전통예술을 발전시키기까지 본인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ㄴ 지금은 금산농악의 다양한 변화과정을 보면서 이후 금산농악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 있다.
현재 금산농악 콘텐츠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음원, 영상, 진법 등 다양한 자료를 만들고 있으며 12월에는 무형문화재가 지정된 이후 첫 정기공연을 할 것이다. 

향후 금산농악의 다양한 현대화 작업을 통해 누구나 쉽게 금산농악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한다. 특히 금산농악 전수관이 건립되면 그 중심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해외교류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금산군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다른 시도의 무형문화재 보존방법에 대한 벤치마킹을 열심히 하고 있다..(끝)  


  
▲ 플스 38회 방송을 마치고.


전인근 
충남 금산출생 
1988~현재 사단법인 뿌리패예술단 이사장 
금산인삼축제 연출, 총감독 
충남 무형문화재 53호 금산농악 보존회장 
2017 금산세계인삼엑스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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