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플레이투스테이지 - 카뮈 '이방인', 산울림 임수현 연출·전박찬 배우를 만나다 | 2018-10-29 04:41:07 |
플티 | 조회5,168 |
▲ 극단 산울림이 오는 21일부터 9월 16일까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무대에 올린다. ⓒ티위스 컴퍼니 제공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극단 산울림의 임수현 연출과 맨 끝줄 소년, 에쿠우스 등에서 자기만의 연기 세계를 선보인 전박찬 배우를 만나 이번에 준비하는 작품에 대해 들어봤다.
극단 산울림의 이방인은 작년에 처음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주인공 뫼르소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는 이 작품으로 작년 2017년에 제54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작년의 성과에 힘입어 극단 산울림의 160회 정기공연으로 또 다시 올리게 될 연극 이방인은 극단 산울림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임수현이 번역, 각색, 연출을 하고 뫼르소역의 전박찬 배우를 비롯하여 정나진, 박윤석, 문병주, 강주희 배우가 함께한다.
특히 전박찬 배우와 박윤석 배우를 제외하고는 이방인을 처음 맞이하는 배우들이기에 재공연이지만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질 것이다. 원작 소설에 나오는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던 올 여름. 무대를 더 뜨겁게 달굴 준비가 되어있는 두 사람과 함께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공연은 오는 21일부터 9월 16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Q. 많은 프랑스 문학 중에 왜 이방인을 선택했는가?
▲ 이방인 공연 포스터 ⓒ티위스 컴퍼니 임수현 : 나는 연극연출가 이전에 불문학자로서 강단에 서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일단 카뮈의 이방인은 개인적으로 문학적 첫사랑이다. 이방인 작품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테지만 연극으로 그리 많이 시도된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이 작품을 무대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내면의 연극성을 찾아보고 싶었다. 작년에 초연을 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의 격려를 받았다.
Q. 1인칭 시점의 소설인데다가 철학적인 무게감이 있어서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임수현 : 원작의 색깔을 간직하면서 연극성을 찾아야 했다. 일단 뫼르소라는 1인칭 화자의 관점으로 모든 걸 이끌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배우에게 많은 독백의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전박찬 배우와 여러 독백 장면들에 대해 논의 했다. 우리의 작품도 이방인이라는 연극 중 하나일 뿐이고 이 원작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전박찬 배우 역시 뫼르소라는 인물 표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박찬 : 처음에 이 작품을 제안 받고 나서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여러 가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학적인 깊이에다가 독백이 많은 점, 게다가 초연이라는 부담도 있었다. 연출님이 대본으로 뽑아놓은 뫼르소의 여러 독백들 중에 몇 장면에 대해 순서를 바꾸고 정리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었다. 하지만 그러고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연출님께서 대본에 넣은 독백이나 순서가 다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굉장히 공들여서 각색 작업을 했기 때문에 내가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 전박찬 배우 ⓒ티위스 컴퍼니 제공 임수현 : 아무리 내가 대본으로 잘 만들어도 결국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맞다. 배우의 의견을 들으면서 오히려 내가 각색 작업 중 놓친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박찬 : 주인공 뫼르소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책의 표지에 나타난 작가 카뮈의 잘생긴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그 이미지가 고정됐을까봐 배역에 더 망설여졌다. 그런데 연출님이 이 작품을 나에게 제안하면서 또 한권의 책을 추천해주셨다. 제목이 ‘뫼르소 살인사건’인데 아랍인의 시각으로 이방인을 다시 들여다본 작품이며 이방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 작품을 읽고 나니 오히려 작품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백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무대가 가진 매력이 있다. 그리고 산울림소극장은 우리나라 연극에서 몇 안 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극장이다. 그 무대가 가진 마법이 있다고 믿는다.
임수현 : 처음엔 뫼르소역을 어떤 배우에게 부탁할까 고민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당시 전박찬 배우가 연기한 ‘맨 끝줄 소년’을 보러갔는데 그 작품의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그 작품 또한 독백이 많았는데 아주 잘 소화해 내는걸 보며 바로 캐스팅을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전박찬 배우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물어물어 연락처를 알아내고 거절당할 각오로 전화를 걸어 대본과 함께 출연을 제안했다. 그 이후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직접 찾아오겠다는 회신이 왔다. 작품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라 예상했는데 찾아와서는 출연하겠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부터 이 작품 잘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Q. 초연과 다르게 연기적으로 고민하는 점이 있다면?
전박찬 : 재공연을 하다보면 지난 공연을 돌아보게 된다. 작년 초연 때는 내가 무언가를 채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주인공 뫼르소는 무언가를 많이 채워서 표현되는 인물이라기보다 서술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묵직한 느낌을 가져볼까 한다.
임수현 : 한번 했기 때문에 뫼르소가 가진 긴 호흡과 절제된 움직임에 대한 내공이 생겼을 거라 믿는다. 그 묵직한 연기를 연출이 아닌 관객입장에서도 기대해본다.
Q. 올해 초 공연했던 ‘알런’이라는 역도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다. 이방인의 뫼르소와 비교한다면?
전박찬 : 인물을 ‘타자화’ 시키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반적인 TV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자주 시도하지 않는다. 그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연극의 매력인 것 같다. ‘맨 끝줄 소년’에서 클라우디오도 그랬지만 내가 타인처럼 연기하는 걸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뫼르소도 알런도 인간이 가진 고독을 상징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알런역과 뫼르소를 연기하니 비슷하면서 다른 차이를 표현하는 게 재밌다.
Q. 작품의 분위기도 여느 연극과 다를 것 같다.
임수현 : 극중 다른 인물들도 뫼르소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 임수현 연출 ⓒ티위스 컴퍼니 제공 뫼르소가 아무리 이방인이라 해도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상상했던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며 바로 그 점이 소설과 연극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요소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작품은 아랍인의 시각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재밌는 것은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재판을 받는데 증인들 중에 아랍인은 아무도 없다. 식민치하의 알제리에서 벌어진 프랑스인에 대한 재판이기 때문에 아랍인은 철저하게 소외된 것이다. 우리는 연극에서 원작에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주력하지만 언젠가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재해석한 연극을 시도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Q. 이번 공연에서 작년과 다르게 변화를 주고자 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임수현 : 이번작품은 초연 대본과의 싸움인 것 같다. 작년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이번 배우들이 무대경험이 워낙 많은 배우들이다 보니 내가 그들로부터 아이디어도 많이 얻는다. 전박찬 배우 외에도 정나진, 박윤석, 문병주, 강주희배우가 출연하는데 전박찬, 박윤석 배우 빼고는 이번에 이방인을 처음 하는 배우들이다. 처음 하는 배우들도 이 작품을 연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박찬 : 상대 배우가 바뀌다보니 나도 역시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작년엔 뫼르소라는 역할을 만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주위 배우들을 돌아보는 재미도 있다.
Q. 이 작품에 담긴 주제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임수현 : 이 작품은 부조리라는 것이 핵심이고 그 부조리는 다름이 아닌 바로 인간의 ‘죽음’이다. 처음에 엄마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다음에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는 것으로 소설의 전반부가 끝난다. 뒤의 이야기는 주인공 뫼르소가 사회적인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현상을 덜어내고 오롯이 죽음을 맞을 때 인간의 삶에 대한 의미가 부각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카뮈라는 작가의 작품들을 놓고 보면 그의 메시지는 이방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방인만큼 유명한 페스트라는 소설에서는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그 해답으로 인간들이 연대해서 부조리한 악을 몰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Q. 산울림은 이전부터 명작공연을 많이 해왔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 중 하나다. 이런 명성이 주는 부담 혹은 상승작용이 있을 것 같다.
임수현 : 산울림소극장이 생긴 것은 30여년이 됐고 내년이면 극단 산울림이 50주년이 된다. 일단 오랜 기간 사랑해주신 관객들께 감사드린다. 내가 극단 산울림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데 굉장히 책임감과 부담을 느낀다. 단체를 유지해 나가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좋은 여건을 만들어 작품을 잘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박찬 : 극장에 들어가는 입구에 이전에 산울림에서 작업했던 많은 연극인들의 사진들이 붙어있다 어렸을 때부터 극장을 드나들면서 이 사진들을 보아왔다. 나는 역사가 쌓여있는 극장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는 것에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 생각한다.
Q. 이 작품을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극단 산울림의 임수현 연출과 전박찬 배우 ⓒ티위스 컴퍼니 제공 전박찬 : 작품이 어렵고 철학적이라는 것 때문에 겁을 내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다 어려워하는 실존주의 철학이 담겨있고 나도 이 작품을 처음 접할 때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냥 세상에 던져진 걸로 생각하고 작품에 임하니 오히려 쉬워졌다. 관객 분들도 철학적인 무언가를 탐닉하러 오기 보다는 그냥 극장에 던져진 느낌으로 오셔서 뫼르소가 고민했던 것들을 함께 나누고 인간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임수현 : 어려운 철학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인간이 얼마나 고독하고 죽음 앞에서 무력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뫼르소라는 한 인물을 통해서 그 고독을 관객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 점은 또 전박찬배우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것이라 생각한다. |